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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중세 봉건 사회 세번째

by 나!! 강쥐 2024.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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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나 중국 일본에 성이 있는 것도 그들이 중세를 거쳤기 때문이다. 반면 영주들에 의해 지방으로 권력이 분산 되지 않고 국왕 중심의 집권 적 체계를 유지했던 한반도에는 거대한 성이 없다. 갑은 국왕이 되어 지배자의 삶을 살았고 을은 농노로서 평이한 삶을 살았다. 기본적으로 중세의 모습은 고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배와 피 지배의 관계가 명확하고 사회는 매우 안정되어 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갑은 더 이상 자기 스스로를 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중세가 그리스 도교의 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도교에서 의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 아니라, 인간이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우주의 창조 주로서 절대적인 지휘를 갖는 유일 무일 한 존재이다, 따라서 그리스 도교의 영향을 받은 사회에서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국왕은 신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통치의 권한을 인정받은 존재이다. 그 권한은 성직자가 인정 해주었고, 그 댓가로 국왕은 성직자의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갑은 생산 수단이라는 물질적 측면과 종교적 인정이라는 정신적 측면 모두에서 권력의 정당성을 획득했다. 따라서 을은 갑의 지배에 불만을 표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사회가 안정되고 견고했던 것이다. 이러한 안정적 사회가 가능 했기에 중세는 천 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세 후기가 되면 견고 했던 사회적 분위기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 원인은 상업의 발달에서 찾을 수 있다.지중해를 중심으로 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부를 축적한 상인 계층이 등장 했다. 이들은 고대와 중세의 유일한 생산 수단인 토지와 영토 그리고 장원을 이용하지 않고 서도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이들은 생산 수단 을 소유한 지배 층 의 권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으면서도 또 스스로도 자유로워지려고 노력 했다. 두 번째 원인은 공장의 발생에서 찾을 수 있다. 18세기가 되면서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 했다 증기 기관은 물을 끓여서 발생한 수증기로 터빈을 움직여 기계를 작동 시켰다. 이러한 증기 기관이 당시에 발전한 분업과 만난다. 분업은 한 명 이 하던 복잡한 일을 여럿이 분담 함으로서 일의 효율을 높이 는 작업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을은 구두 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예전에는 을 혼자서 소를 잡고 가죽을 벗긴 다음 이를 말리고 재단해서 구두를 만들고 마름질을 했다. 구두 한 켤레를 만드는 데는 보름 이상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분업이 도입된 후에 을은 혼자 작업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서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름이면 열 켤레의 구두를 만들 수가 있었다. 각각이 일을 나누어서 자신의 일만 하고 을은 최종적으로 완성된 구두를 점검했다. 작업이 분담 되니 일은 단순해지고 빨라졌다. 이러한 분업이 증기기관과 만나 폭발적인 효율성을 일으켰는데, 그것은 공장의 등장을 의미 했다. 증기기관은 단순한 동작을 반복 할수 있었기에, 을은 분업 화된 작업 단계 중 단순한 동작이 필요한 과정에 증기 기관을 설치 했다. 공장을 가동하자 구두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을은 공장을 소유한 공장장이 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공장의 의미다. 공장은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많은 양의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즉 공장은 새로운 생산 수단이다. 그런데 앞에서 우리는 생산 수단과 생산물이라는 물질적 가치가 비 물질적인 사회적 관계로서의 권력을 발생 시키다는 것을 알았다. 즉 공장이라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을은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산 수단을 소유한 계급을 '부르주아 '라고 부른다. 부르주아의 뜻은 자체가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부르주아는 다른 말로 자본자 계급, 시민 계급, 유산 계급 이라 고도 부른다. 그런데 국왕인 갑은 아직도 장원이라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고, 이를 통해 막강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을은 공장이라는 새로운 생산 수단을 통해 권력을  갖게 되었다. 갑과 을의 권력을 구분 하기 위해 갑의 권력은 구 권력, 을의 권력은 신 권력 이라고 부르자. 시대와 사회는 하나 인데 권력은 둘 이다. 구 권력은 신 권력과 충돌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상황은 다음과 같은 예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학교 짱이 혼자 지배하는 우리 교실은 평화롭다. 그러던 어느 날 옆 학교의 짱이 공교롭게도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다. 반은 하나 인데 짱은 둘 인 상황. 그날부터 각각의 짱을 중심으로 권력이 재편되고, 짱 들 간에 갈등은 첨예 해진다. 이 갈등은 한 명의 짱 이 평정 할 때까지 계속 된다.



그럼 이제 네 가지 경제 체제를 구분해 보기로 하자. 답부터 말하면 네 가지 경제 체제는 앞에서 이해한 정부와 시장의 관계를 통해서 구분해볼 수 있다. 초기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만이 존재하는 경제 체제이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며 등장 하는데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제 체제이다. 다음으로 신 자유주의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등장 하는데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유를 확대 하려는 경제 체제이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는 시장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고 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통제만이 존재하는 그런 경제 체제이다. 앞서 우리는 정부의 개입이 의미하는 것이 세금의 인상임을 알았다. 그리고 세금의 인상은 복지 확대와 직결되었다. 이를 적용하면 초기 자본주의는 정부의 개입이 없으므로 세금이 서 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복지도 없다. 반면 극단적인 공산주의는 세금이 거의 백 프로에 가까울 것 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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